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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9일째 인간의 이성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성경의 신빙성은 충분히 증명된다.

소망씨 2023. 1. 31. 19:22

기독교강요 9일째

 

8장 인간의 이성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성경의 신빙성은 충분히 증명된다.

 

성경은 먼저 그 배치에서 너무나 훌륭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교리가 얼마나 완전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모른다. 그 언어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그 주제의 위엄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천국의 그 숭고한 신비가 평범하고 겸손한 언어로 표현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데 전념하게 되면 인간의 그 어떤 위대한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골수에까지 새겨지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모든 내용에 성령의 위엄이 뚜렷하다. 그래서 완고한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을 헐뜯고자 해도 성경 안에는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 가득차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모세시대에서 4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볼대에 성경은 고전성에서도 그 어떤 책보다 우수하다. 그리고 레위지파에 속한 모세는 그의 조상 레위에 대해서 말씀그대로 기록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49:5) 그는 가문의 불명예에 대해서 침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가문의 불명예를 그대로 기록하였고, 성경의 진실성이 성경 곳곳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출애굽기, 민수기에는 수많은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세가 참된 선지자였고,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모세가 행한 이런 이적들은 결코 속임수가 될 수 없다. 속임수였다면 어떻게 그 많은 반역중을 모세가 견딜 수 있었겠으며, 하늘에 만나가 40년간 어떻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릴수 있었겠는가? 또한 평일에 더 걷은 만나는 어떻게 말씀대로 부패할 수 있었겠는가? 모세의 이적은 실제적인 이적이었기에 모든시대에 하나님의 교훈에 대한 확신을 주었던 것이다.

 

아울러 모세는 야곱을 통해서 유다지파가운데 왕권이 나올 것을 예언하였다.(49:10) 그런데 모세 당시에도 유다지파에서 왕권이 나올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이후 사무엘시대에도 베냐민지파에서 사울 왕이 나왔다. 이때 다윗의 집안은 양을 치는 지극한 평민집이었다. 거기다가 다윗은 그 집에서 7번째 막둥이에 불과하였다. 이런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전적으로 예언의 성취라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모세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언약안에 들어올 것을 희미하기는 하지만 에언하였다. (49:10) 그런데 이 예언도 2000년이 지나서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이런 예언의 성취는 다른 예언자들의 통해서 더욱 명백하게 발견된다. 이사야 45:1절에 보면 이사야는 고레스 이름을 들면서 갈대아(바벨론) 사람들이 이 고레스에 항복하며 그로 인해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자유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예언하였다. 그로부터 100년뒤에 고레스가 태어났고 예언 그대로 이루어 졌다. 예레미야는 포로기간이 70년이라고 에언했는데 놀랍게 그대로 이루어졌다.(25:11,12) 모든 예언이 하나님께로 나온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성경을 공격하는 자들은 성경의 기록자인 모세가 실존인물인가? 공격한다. 이것은 플라톤, 키케로가 실존인물인가 하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모세의 율법이 전승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섭리였다. 왕하 22:8절에 보면 요시야왕이 율법을 발견하고 그 원본은 성전에 보존하고, 사본을 만들어 왕의 서고에 두게 하였다. 참으로 이런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율법의 권위가 확인되지 않은 때나, 그것이 새롭게 되지 않은 시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마카비 시대에 안티오쿠스가 모든 책을 다 불태우라고 명했는데 어떻게 성경이 보존되었는가 하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박해가 끝나자 성경이 즉시 나타나고 경건한 자들이 이를 성경으로 인정한 것을 볼때에 오히려 위조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후에도 더 큰 박해시대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보존이며 이것은 성경의 진정성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도 복음서의 단순성에 하늘이 위엄과 권위가 나타나 있다. 특히 요한복음은 믿음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완고함을 벼락치듯 꾸짖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일체의 존경심을 몰아내는 자들이 특별히 요한복음을 읽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둔한 마음을 각성시켜줄 무수한 말씀들을 발견하게 해 주어야 한다. 성경의 기록자들이 어부들, 박해자이지만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가르침이기에 하늘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지금까지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전세계와 함께 성경을 억압, 파괴하며, 혹은 인간의 기억에서 이를 전적으로 제거, 말살시키고자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성경은 종려나무와 같아서 점점 더 높이 자라며 공격할 수 없는 것으로 존속하여 왔다. 인간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반항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자체의 힘으로 지금까지 널리 보급되어 왔다. 더우기 서로 다른 모든 민족이 일치하게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큰 감동을 준다. 참으로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의 교리는 많은 성도들의 피로 확증되고 증언되었다. 그들은 일단 그 교리를 받아들이면 용감하고 대담무쌍하게. 심지어는 큰 정열을 가지고 죽음을 당하는데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보증금을 치루고 성경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를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은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참으로 이 모든 사실은 우리에게 성경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과 소중함을 더욱 확신있게 심어준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감이기에 오직 성령의 내적확신위에서만 그 확실성이 분명해진다. 오직 성령의 내적 확신으로만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식에 이르게 된다. 오직 믿음으로만이 이 모든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성경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해도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이다. 이에 어거스틴도 사람이 이 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건과 마음의 평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일찍이 경고하였다.